These old shades

These old shades by Georgette Heyer
귀족 남주 / 평민 여주
18세기, 남장여자, 나이차, 키잡
 
어느날 갑자기 남장여자물이 읽고싶어졌는데 현대나 동양물은 안 땡기고 영미권 시대물에도 남장여자가... 있나? 하고 찾다가 리뷰 많은 걸로 고른 거. 근데 남장여자물은 곁다리고 사실 유사부녀키잡물이었음!!(오히려 좋아!)

스토리는 루이15세 시대 프랑스와 영국을 배경으로 사교계의 악마로 악명높은 에이번 공작이 복수를 위해 천민 남장여자 레오니를 돈 주고 사서 사교계의 꽃으로 데뷔시키고 후견인 역할을 하다가 감기는...? 이야기.
 
남장여자물의 재미는 사실 여자인 줄 모르고 남주가 성정체성 고민하고 혼자 삽질하고 이런 묘사인데 워낙 남주가 전지전능 악마같은 캐릭터라서 그런 묘사는 전혀 없다. 오히려 여주인공과 나머지 등장인물들이 남주의 빅 픽쳐에 이용되고 손바닥 위에서 노는 뭐 그런 흐름임
 
배경이 배경이라 잘 모르는 단어나 묘사가 많아서 이것저것 찾아보며 읽다 보니 생전 없던 18세기 페티시 생긴 듯 ㅠㅠ

ㄹㅇ 이런

요런 분위기
(베르사유 궁전 가서 퐁파두르 부인이나 왕족 알현하는 내용도 나옴)

일단 나는 엄청 재밌게 읽긴 했는데 처음에 좀 떨떠름했던 부분이 있음. 이게 100년 전 소설이기도 해서 요즘 읽기엔 찝찝한 점이 한둘이 아님ㅋㅋ 장르소설이 다 그렇긴 한데 고증이 꽤 철저해서 그런지 이상하게 ㄹㅇ 18세기 한가운데 떨어진 느낌으로 기분 나쁘게 하는 모먼트가 있더라
 
- 돈으로 사람을 사고 파는 게 당연함
- 귀족 부인들은 가문을 이어야할 아들 생산에 목숨을 검
- "귀족적인" 외모와 몸매로 사람의 신분을 평가하고 우열을 나눔
- 남주인공이 여주를 돈으로 사서 구해줬기 때문에 우열관계가 확실
- 나이차도 좀... 남주 40 여주 19(인데 여주 행동이 선머슴이라 더 애기같음)
 
등등 안 그래도 요즘 연하남 로맨스물에 빠져있었는데 거의 정반대로 여주가 남주의 애완동물 내지 손녀딸; 같은 관계를 보니 아 적응이 안됨... 원서 원래 더듬더듬 읽는데 더 거북이처럼 읽음 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재밌기" 때문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는데 여주 레오니가 숨통을 틔워줌 ㅋㅋ 워낙 오래 남자로 키워지다 보니 치마보다 바지를 좋아하고, 말도 다리 벌리고 타겠다고 고집하고, 여자가 쓰면 안 될 어휘를 남발함 (읽다보면 대체 Bah! 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짐ㅠㅋㅋ) 가끔 읽는 나도 얘 이러다 쫓겨나는 거 아닌가 하고 헉스러울 정도였다. 시종 주제에 고귀한 공작님의 호의에 기대서 말대답을 한다든가 공작을 오히려 시종처럼 부린다든가 함 (아니 어떤 미친 시종이 주인보다 먼저 잠들어요 채찍질 당하는거 아니냐고 ㅋㅋ) 베르사유 가서 국왕폐하 본 소감 "진짜 동전 같았어요!" 는 레전드 ㅋㅋㅋㅋ

동전에 국왕 얼굴 있긴 함 ㄹㅇ;ㅋㅋ

그리고 이야기 자체가 너무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ㅋㅋ 이 속내 모를 공작이 레오니를 애지중지 키워서 사교계에 데뷔시키는 과정이 어디까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복수를 위한 밑밥인지 대체 무슨 복수를 어떻게 하려고 하는건지 궁금해서 읽다 보면... 갑자기 에이번이 멋있어 보이는 지점이 옴;
 
맨날 부채 들고 다니면서(!!!) 가발도 한 올의 흐트러짐 없고 실종된 여주인공 찾아갈 때도 화려하고 예쁜 옷은 꼭 챙겨갈 정도로 체면치레하고 인간 공작새같이 재수없게 행동하는 남주인데... 여주가 납치됐다가 탈출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특유의 유머로 고고하게 문 열고 등장하는 장면에서 헉... 멋있음...!! 하게 되면 끝나는 것ㅋㅋ (내가 이랬음) 에이번 특유의 시니컬한 개그가 매력있고 가끔 여주가 엉뚱한 소리 하면 눈도 안 깜빡이고 "마이 차일드, 그거 칭찬 아니란다" 하고 조용하게 츳코미(ㅋㅋ)하는거 귀여움 ㄱ-ㅋㅋ 그리고 더러운 곳 가면 꼭 손수건 꺼내서 입 가리고 손도 안 대고 다닌다던가 하는 묘사들 하나하나가 생생해서,, 옷만 레이스로 차려입고 마인드는 현대인 뺨치도록 진보적인 요즘 캐릭터들과 차별화되는 게 또 좋았음 ㄹㅇ 그 시대 사람같은 느낌 ㅎㅎㅎ

복수의 전말은 여주의 [출생의 비밀]과 관계가 있는데 이걸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되갚을지 공작이 철저히 비밀로 하다가 클라이막스에서 터트리는 전개라 너무 궁금해서 허겁지겁 읽었고 전말을 공작의 입으로 시원하게 밝혀줘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래도 절반이 프랑스 배경이라 대사 중간에 불어도 자꾸 나오고 말투, 단어들 너무 어려워서 힘들긴 했음 친절하게 해설해준 챗gpt 아니엇음 완독 못했을듯 ㅎㅎ

남주 에이번이 정말 속내를 모를 사람이고 말끝마다 My child, My infant 라고 부르면서 귀여워하며 여주 볼을 툭 친다던가, 그 애한테 나는 부모같은 존재라고 하면서 이성적인 표현은 거의 없다시피 한데 복수극이 끝나고 나서는 정석 키잡물 클리셰로맨스를 치사량으로 부어줘서 또 그게 너무 좋았..음...
 
키잡물에서 결혼하기에는 너무 사랑하는 존재라서 소녀가 먼저 고백해도 나같은 나이든 남자 말고 다른 좋은 남자 골라주겠다고 철벽치는거 진짜 너무너무 좋아하거든요... 여주가 신분차 때문에 결혼이 싫다면 애첩으로라도 곁에 있고 싶다고 하니까 항상 여주한텐 부둥부둥해주던 공작이 처음으로 정색하면서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하는것도 또 너무 좋아서 글자 하나하나 아껴 씹으며서 줄치면서 읽음 ㅜㅜ 넌 나의 좋은 점만 봤고 내 난잡한 과거를 몰라서 그래 ~ 하면서 조곤조곤 과거 고해성사 하는 것도 좋았음 결국은 여주의 막무가내 고백공격에 넘어가지만 ㅎ (몽시뇰, 저는 당신의 첫 여자보다 마지막 여자가 되고 싶어요)

완독하고 가상캐스팅이나 다른 판본 표지 찾아보다가 여주인공의 특징적인 외모묘사 (빨간머리)가 소설내에서 엄청 중요한데 이게 잘 안 보이는 표지들이 많아보여서 좀 슬펐다ㅜㅜ 울나라 번역본이 없는 거 같길래 일본은 있나 해서 찾아봤더니 일본 정발본도 다른 시리즈 표지 가져다가 써서 전혀 다른 커플의 일러가 표지였던...

속편은 에이번-레오니 커플의 아들 내용인가 봄 재밌지만 정말 힘들게(ㅜㅠ) 읽어서 다음권은 천천히 읽어야지 했는데 이 커플 아들 내용이고 조젯 헤이어 로설 중에 젤 인기많다고 해서 ,,, 궁금함을 못참고 조만간 읽을 듯